[일상] 어서오세요. 전주로.




 이번 겨울부터였다. 전주 놀러오라고 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던게. 새로 이사한 집이 여러명을 커버 할 수 있게 되고 난 뒤로, 전주가 익숙해지고, 데리고 가고 싶은 맛집이 생기고, 차가 생기는 등의 이유로 보고싶은 타지역 지인들에게 놀러오라며 끊임없이 유혹의 멘트를 날리곤 했다. 고로 집에 놀러온 손님들로 이 아이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미 한 번 전주를 놀러왔던 멤버도 끼어있었다. 그렇지만 매번 손님들을 초대하는건 긴장되고, 들뜨고, 묘하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많아서 상당히 조심스럽기도 했다. 집 안 두 화장실의 묵은 물때를 벗기고 신경써서 청소하는 당연한 준비부터 시작해서, 어딜 데려가야할지,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등의 고민들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최근의 큰 사건으로 내 차량을 사용 할 수 도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신경쓰였다. 

 다행스러운건 전주는 갈 곳이 한 두 군데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과 말 그대로 '먹으러' 놀러 온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는 지역이라(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처음 전주로 초대하는 손님들에겐 비슷한 레파토리로 데리고 가고 먹이면 50점은 먹고 가기에 이번에도 그러자 마음 먹었다. 저녁에 합류하는 남동생을 제외하면 전부 여동생들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갈 곳을 정했다.

 

 이번에 놀러오는 친구들은 작년에 함께 일본을 갔던 팀원들이었다. 전국에서 모여 갔던 문화탐방이기에 팀원 각각이 지내는 지역이 달랐고, 오랜만에 한 번 만나자는 말과 동시에 중앙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의 위치가 아이들을 이곳으로 오게끔 하는데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전부터 전주에 놀러 오겠다는 아이들의 의지어린 카톡과 먹방의 도시라는 점, 잘 곳이 있다는 것 또한 한 몫 했을테고. 어찌됐건 우여곡절 끝에 날짜가 잡히고 당일이 되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 약속했기에 일을 무리하게 서둘러 끝냈다. 차를 사용하지 못하는것도 문제였지만 설상가상으로 장마가 겹쳐 날씨는 우중충하거나 비가 오거나 습하거나 했다. 차를 렌트하려 알아보다가 작은 전주권 내에선 택시가 나을것 같아 그만 뒀다. 지난번에 한 아이가 전주의 '상수역283'의 이름을 가진 음식점을 SNS를 통해 본 것인지 내게 가봤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던게 기억이 나서 점심 해결을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한 달여 전에 다른 대외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처음으로 그곳을 갔었을 때 맛이 상당히 괜찮아서 맛집 리스트에 꼭 넣겠다고 생각했었던 라자냐가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일을 끝내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객사쪽으로 갔더니 이미 아이들은 도착해있었다. 상수역283은 주말에 항상 만원이었기에 대기 시간이 필요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들은 작년과 그대로였다. 뭐 사람이 쉽게 변하냐만은 여전히 리액션이 크고, 재밌고, 귀엽고 그랬다. 다섯살이나 어린 친구들 사이에 있으려니 생기는 부담감은 1도 없었다. 곧잘 끼어들어 근황을 얘기하고, 쉼 없이 수다를 떨었다. 준비된 라자냐가 다 떨어져서 라자냐를 주문하진 못했지만 다른 음식들도 충분히 맛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아서 기분 좋은 점심 시간이었다. 스물 둘의 아이폰유저 셋이 알아서 사진을 척척 찍고 하니 블로거인 나로썬 나중에 사진만 받으면 되고 하니 편하고 더 좋았달까.



상수역283은 실패한 음식이 없다.


활력 터지는 손님들


 식사를 하면서도 다음 디저트를 상상하는 아이들의 위(胃)대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차례 겪는 경험이지만 매번 익숙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내 의견따위 뭐가 중요한가. 애기들에게 전주를 또 놀러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무의식적인 임무를 수 행하고 있기에, 밥을 먹으며 다음 갈 곳은 전북대 근처의 조각케잌이 유명한 한 카페라고 언질해 두자 애기들 눈이 빛이 난다. 평소에 다그래가 정말 좋아하는 카페며 당근 케잌이 유명한 '어느날의 오후'카페가 바로 그곳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곧장 카페로 향했다.

 케잌을 세 개나 시키자는 아이들의 말에 그저 '대단해!'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또 그 세 개가 홀랑 다 사라지는 마법은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김연아 혹은 김연경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경외감과 흡사했다. 아이들이 케잌을 먹으며 그 다음 디디져트를 상상하지 않은건 정말 다행(?)이었다. 당근케잌과 다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두 케잌. 그리고 음료 두 개는 비좁은 위주머니 틈새를 공략하느라 무척 바빴을 것이라 예상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리다 말다 하던 비는 다행히도 우리가 나갈때 쯤엔 내리지 않았다. 잠시후 합류하는 남동생이 오기까지 약 두 시간여의 시간이 남아있어 짐도 놓을 겸 해서 집으로 향했다. 


깨알같이 잘 찍어뒀네. 대견한 애기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 나도 이 곳 케잌은 꽤나 맛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집 구경을 마친 아이들과 한 것은 일종의 부동산투기 게임 '부루마불'이었다. 군대에서 참 많이했던 게임이기도. 군대와의 연관성을 찾을 필요는 없고, 다행스럽게도 애기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악물고 하는거 옆에서 보고 있자니 부루마불 없었으면 어쩔뻔.. 어쨌든꼴찌를 해버렸지만 참 건전하고 학습(?)적인 분위기에 뿌듯했다. 한 판이 다 끝날때 쯤 남동생이 찾아왔다. 전주 초대 레파토리의 하나인 전주 막걸리골목 체험 시간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서신동쪽 옛촌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난 이곳이 다른곳보다 훨씬 나았다.



통행료 80만원 내놔! 더블이니까 한 번 더 던져.




옛촌에 도착할때쯤엔 습함이 절정에 달해 불쾌지수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5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 쉽게 나지 않아서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짜증은 폭팔하는데 누구의 잘못인게 아니니 억지 미소 띄우며 참기를 수십분. 드디어 별관쪽에 자리가 생겼다해서 들어갔다. 옛촌은 언제 가도 항상 시끌벅적. 처음 전주 막걸리집에 가보는 친구들은 먼저 주전자 단위로 새로 추가되는 안주에 신기해하고, 나쁘지 않은 맛에 고개를 끄덕이며 먹다보면 어느새 알딸딸해져 눈 앞의 시야가 15도쯤 기울어져 보이게 되기 마련. 하지만 다행히도 점심식사부터 케잌까지 활약상을 낱낱이 보여줬던 벤쯔들이라 생각했던것만큼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꿈틀거리는 낙지도 호로록, 게장에 밥도 쓱쓱 해서 자알 먹었다. 이곳에서 막걸리 마시며 지금 기억남는 두 가지. 먼저 알바생들은 대다수가 외국인들이었는데 그들이 최저시급을 잘 받고 있는지는 살짝 의문스러웠고(오지랖인가), 두 번째는 꿋꿋한 그 알바생들의 쇼맨십이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 분해 쇼나 삼계탕, 김치찜의 고기, 족발, 간장게장 등의 해체 쇼를 손님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열심히 선보이신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게 분명한데, 어.. 음.. 앞치마의 여분은 충분하겠지? 허허.



짠-


우리 셀카 왜이렇게 많니


 배를 땅땅 두드리며 나와서 택시 두 대에 나눠 타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간단하게 2차를 하기로. 집 근처에서 피자 하나랑 간단히 안주와 술을 사고 집에 들어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 왜 부루마불을 하게 됐는진 몰라도 부루마블을 했다. 대단해. 난 또 꼴등했다. 앞으로 부동산에 손을 델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술을 마시고 얘기를 한참 하고있는데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12시도 안됐는데 윽. 벌써부터 피로하다니.. 간때문인가. 도저히 못참고 난 자겠음 ㅂㅂ. 하고 들어가서 잤다. 들어보니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었다는데 잘 한 선택 같았다.


이게 마지막 셀카니까 걱정말라구.


 일어나보니 알아서 이불 잘 깔고 자고있네. 기특한 애기들. 쓸데없이 화장실이 두 개인게 오랜만에 제 효과를 발휘하는 아침. 일사불란하게 각자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얘네 아점을 무얼먹여야하나 고민하던차에. 술을 많이 먹지 않아 해장은 필요없다는 애기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가성비 갚인 근처 중국집 사천향에 데려갔다. 지금은 행사기간으로 매장에서 먹으면 가격이 상당히 저렴해서 여러차례 친구와 갔던 곳이었다. 누구는 콩국수 누구는 간짜장 누구는 물짜장 등 다양하게 시켜서 먹이고 나니 정오가 다되어 있었다.




 애기들중에 사주 매니아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를 필두로 용하다는 객사의 한 사주집에 갔다. 나는 그런것에 관심없어서 다른 아이들이 사주 풀이 듣는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요즘 컨디션 난조같음. 얘네 사주에 관심있는건 아니니까 난 내 회복에 힘을 쓴거지 뭐. 사주를 끝으로 대략적인 전주 투어를 끝냈다. 한옥마을이나 남부 야시장을 데려갈법도 했지만 이미 그곳은 가본 애들이 많았고 처음에도 얘기 했듯이 전주는 '먹으러' 오는것이 분명하니까. 아이들을 무사히 보내고 남동생만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이것도 일이라고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뻗어서 4시간은 잤던것 같다. 

 아이들이 잘 놀다 간것인지, 어디 불편하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진 않았는지 재차 되새김질 해보게된다. 얼굴 보는 것만으로 좋다는 아이들이지만 초대한 사람 입장으로선 알게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장마기간과 뚜벅이인 시기가 겹치다보니 못내 아쉽고 자꾸 생각나고 그렇다. 다음엔 그림같은 집이라고 자랑을 많이 해놓은 부모님집 고창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으니 아마 조만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애기들이 센스는 있어서 집에 놀러온 기념으로 선물해준 선물들을 마지막으로 올리며 이번 전주로의 초대 포스팅은 마무리. 먼저 하나는 섬유향수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은데, 카카오 인생캐 라이언이 뻔뻔하게 위치해있다. 예전에 선물받았던 섬유향수를 다 쓴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너 어떻게 알았니.. 혹시 뭐 설치해놨니 우리집에? 향이 좋아서 셔츠 입을 때 매번 뿌린다. 외출시 부족한 1%를 담당. 두 번째 선물은 선물해준 친구 블로그 글을 보니 두 시간 넘게 돌아다니며 고른 거라는데, 그만큼 앙증맞은 비쥬얼의 새식구였다. 이사하고 나서 휑한 진열대를 채우고 싶은 욕구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 선인장 같은 화분이 갖고싶었는데 어쩜 이렇게 다가오시는지. 밀짚모자로 화룡점정 했으니 이름은 '루피'로 지어야하나. 세 번째 선물은 세계지도! 지도 선물은 처음 받아봤다. 투박한 푸른 색이나 지도 전체가 단색이 아닌 베이지톤의 바다색과 파스텔 톤의 각국의 색 조합이 맘에 쏙 들었다. 이번에 세 곳 정도 해외로 나가는 티켓이 있는데 더 나가야 할것만 같은 여행 충동을 일으킨달까. 기분 좋게 벽 메인을 위치하셨다. 선물 받은거 자랑 쓰다보니 이거 뭐 거의 뷰티블로거 리뷰 글이 되가네. 여튼 선물 감사합니다 동생님들!




화장대 입성.


난 해적왕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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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끕끕한 여름,
      비오는 날의 낭만인 주전자 막걸리
      실내에서의 부루마불..
      짜릿한 당근케이크라니...
      저마저 추억에 잠기게 하는
      흐뭇한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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